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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영화 의무상영, 스크린 쿼터제

기사승인 2019.06.03  19:3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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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텐츠 진흥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

  “너 이번에 나온 어벤져스: 엔드게임 봤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화젯거리다. 지난 4월 개봉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전국 3,058개 스크린 중 2.927개인 95.7%를 독점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상영관을 독점한 탓에 동 기간에 상영된 영화가 43편에 달하지만 이들에게 해당된 상영 회차는 겨우 19.2%였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처럼 마블, 미션임파서블 등 외국 영화가 개봉할 때면 상영관에서 한국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미국 영화는 6~7개의 거대 배급사가 한 해 약 12편 이상의 흥행이 보장된 영화를 내놓고 있는 반면 한국 영화는 어떤 영화가 흥행할 것인지 개봉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스크린쿼터제가 없다면 흥행이 보장된 미국 영화와 흥행이 불확실한 한국 영화 중 어느 것이 극장에 걸리겠는가. 결과는 뻔하다. 스크린쿼터제가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 영화가 있는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18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영화의 관객 점유율은 50.9%로 해외 수입 영화들에 비해 우위를 점했지만 한국 영화의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높은 제작비의 영화들은 물론 안시성, 마약왕 등 흥행에 성공한 영화들이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가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속사정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스크린쿼터제는 우리에게 아직 필요한 제도다.
  더 나아가 영화의 다양성 보호와 소비자의 선택권 보장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스크린쿼터제가 시행되지 않는다면 ‘팔리는 영화들’에 ‘다양한 영화들’이 밀리게 되고 이는 곧 소비자들의 선택권 축소로 이어질 것이다. 스크린쿼터제의 시행으로 한국 영화 산업, 나아가 중·저예산 영화 보호를 통해 영화의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 영화의 다양성은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해 준다.
  지금은 자본주의 시대다. 영화 산업을 규제 없이 시장에 맡긴다면 다수가 좋아하는 영화 분야만 발전하게 된다. 영화제작사 입장에서는 돈이 되는 영화를 제작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7년 상영한 공조·더킹·조작된 도시는 모두 조폭·형사·타락한 정치인을 소재로 하고 있다. 중복된 소재 사용에 관객들 사이에서는 식상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스크린쿼터제는 영화 산업의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필요한 만큼만 제한을 하자는 것이다. 스크린쿼터제는 터무니없는 규제가 아니라 영화 산업의 보호·발전과 소비자의 자유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다.

 

   
 

경쟁력 있는 한국 영화, 시장의 순리대로

  성황리에 상영되고 있는 영화 ‘어벤져스’가 개봉 당일 점유율 90%를 차지하면서 스크린 쿼터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스크린 쿼터제’는 극장이 자국의 영화를 일정 기준 일수 이상 상영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로 우리나라에는 1966년 영화법 제2차 개정 때 도입됐다. 영국에서 시작돼 이외 국가에서도 시행했으나 지속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프랑스·브라질·스페인 등 소수의 국가뿐이다.
  스크린 쿼터제의 목적은 국산영화의 상영을 의무화해 외국 영화의 독점적 시장 지배를 견제하는 것이다. 영화산업이 취약한 국가일수록 이 제도가 필수적이고, 폐지 시 멕시코·브라질처럼 영화산업 자체가 쇠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은 어떤가. 미국영화협회에 따르면 2018년 한국 영화 시장 규모는 세계 5위였고 영화진흥위원회 ‘2018년 한국 영화 결산’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한국영화 누적 관객은 2억 명, 매출액은 1조 8,000억 원의 규모였다. 또한 지난달 26일 칸 국제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해 한국 영화의 세계적인 위상을 증명했다.
  이러한 경쟁력을 갖춘 한국 영화가 영화관에서 외국 영화와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스크린 쿼터제는 더 이상 다양성 보호를 위함이 아닌 문화소비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진정한 문화 다양성을 위해 시급한 것은 외국 영화의 상영 스크린 수 제한이 아니다. 국내 제작사와 영화관 소유를 동시에 하는 대기업을 규제해 극장의 스크린 독점 현상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다. 단순히 상영관 수만을 늘리는 현재의 스크린 쿼터제가 아닌 독립영화 제작비 지원이나 관객 인식 개선과 같은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장은 수요와 공급의 작용으로 운영된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군가의 통제가 아닌 시장 그 자체의 힘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제작사는 영화가 소비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더 질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도태되지 않는다. 스크린 쿼터제는 이러한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국가가 개입해 영화사 스스로 더 질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게 하고 소비자가 좋은 영화를 고르는 안목을 갖지 못하게 만든다.
  시대가 바뀌었다면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세계 5위, 관객 2억 명의 한국 영화는 더 이상 1960년대의 나약한 문화 산업이 아니다. 정부의 보호에서 벗어나 외국영화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로 소비자의 공정한 평가를 받으며 경쟁해야 한다.

강유정·조서진 기자 gc5994@daum.net

<저작권자 © 가천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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