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지 않을 권리… 현대인에게는 당연
‘연결되지 않을 권리’란 퇴근 후 회사에서 연락받지 않을 권리를 뜻한다. 최근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으로 언제 어디서나 업무가 가능해지면서 새롭게 정의된 노동기본권이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서 업무시간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려워지자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확산됐고, 아예 법으로 보장하자는 방안까지 나왔다.
정신노동과 지식기반 노동이 많아짐에 따라 업무와 비업무 간 시간적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보다 훨씬 많다. 2021년 연간 근로시간이 1,915시간으로 OECD 국가 중 네 번째였다. 공식 업무시간뿐만 아니라 퇴근 후에도 SNS로 업무 지시를 받거나 직장 상사의 연락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러한 일도 모두 근무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지난해 직장인 1,05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3.5%가 퇴근 후 업무 관련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64.1%는 ‘연락이 와서 답장한 적이 있다’고 했고, 19.4%는 ‘연락이 왔지만 알람을 끄거나 보지 않고 다음 날 답장했다’고 했다.
이처럼 퇴근 후 연락은 연장 근로 차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다. 직장인이라도 회사 밖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개인이 회사나 상사를 상대로 저항권이나 발언권을 행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만큼 근로자 보호와 근로권 확보 차원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실제로 프랑스, 필리핀 등 일부 국가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9년 세계 최초로 이 권리를 법제화해 50인 이상 기업에 대해서는 매년 단체교섭에 관련 협상을 포함하도록 명문화했다. 이에 따라 각종 정보통신기기차단으로부터 근로자는 차단할 권리를 획득했다. 사업주가 관련 단체협상을 하지 않으면 처벌한다. 슬로바키아, 캐나다 등도 유사한 법을 시행 중이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의 법적 보장은 ‘근로시간 외의 근로’를 없애기 위해 꼭 필요하다. 사회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해외 사례를 참고해 우리 실정에 맞는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권예은 기자
노사 현안 봇물… ‘연결되지 않을 권리’ 먼저 아냐
우리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세상사와 인간사를 일일이 규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법이 많다고 좋은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 뿐더러 법을 계속해서 만든다 해도 사회에 만연한 문제들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근로조건, 노사관계만 해도 바로잡아야 할 사안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최근 대두되는 ‘업무 시간 외 연락 금지’의 법제화 논의는 너무 섣부른 느낌이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는 법으로 만들어 규제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와 관련해 먼저 해결할 과제는 업무 연장에 대한 불만을 해결할 노사합의다. 한국의 근로시간은 다른 나라에 비해 길다. 노동시간의 관리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시간 외 세부 사안을 먼저 해결하려는 것은 순서가 안 맞는다. 독일은 ‘연결되지 않을 권리’ 관련 법은 없지만 기업마다 사업장 특성에 맞게 개별적으로 노동시간 외에는 연락 횟수를 제한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도 독일처럼 개별 기업마다 사정에 맞게 노동시간 외 연락 횟수를 정하도록 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과적이다.
업무 시간 외에 연락이 왔다면 그것은 긴급 상황일 가능성이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긴급한 상황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은 오히려 자유로워짐을 뜻한다. 긴급 상황인데도 업무 시간이 지났다고 연락을 안 하는 일은 시대착오적이다. 다만 업무 외의 연락을 지속으로 한다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대처할 수 있다.
회사 업무를 법으로 엮어 통제하려는 발상에서 벗어나 노사 간 자율적인 합의를 유도해야 한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의 법제화는 정부가 기업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적관계에 간섭하려는 시도와 다를 바 없다. 이는 자칫하면 독재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 문제는 정부가 나설 게 아니라 기업과 노동자 간에 풀도록 공론화하면 된다. 바람직한 관행이 정착하지 못하고 노동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가 계속된다면 그때 법제화에 나서도 늦지 않다.
우리 사회에는 풀어야할 노동 관련 현안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거론하는 것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라고 확신한다. 법의 실현은 이상 사회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권예은 기자·권현서 기자 press@gach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