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편익 증진과 고용 확대 가능성 키워
지난달 14일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 근무제'를 내년에 시범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주 4.5일 근무제란 주당 평균 근로 시간을 36시간으로 줄이는 것으로, 격주로 주 4일만 근무하거나 매주 금요일에 반나절만 근무하는 제도다.
최근 워라밸, 즉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경향이 확산되는 가운데, 주 4.5일 근무제는 삶의 질을 높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금요일이 휴무일이 되면 주 5일제 때보다 더 여유로운 주말을 즐길 수 있다. 따라서 근로자는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줄일 수 있어 삶의 행복도가 높아져 주어진 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됨으로써 기업의 생산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 실제로 영국의 기업과 비영리단체 61곳이 임금 삭감 없이 주 4일 근무제를 6개월간 시행한 결과, 근로자의 96%가 근무 시간 단축으로 스트레스 수준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또 기업 임원의 82%는 주 4일 근무제가 이직률 감소와 기업 생산성 향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주 4.5일 근무제는 기업의 고용 확대로 이어져 취업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2004년 주 5일 근무제 도입으로 전보다 취업자가 267만 명 증가했다.
주 4.5일 근무제는 경력 단절의 위험을 줄이고 재취업의 문턱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금요일의 휴무나 반일 근무는 아이가 있는 부모가 일과 가정환경을 모두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의 주 4일 근무제 시행 연구에 참여한 기업의 근로자 중 50%가 주 4일 근무제가 일과 가족 돌봄 간의 균형을 맞추는데 도움이 됐다고 응답한 바 있다. 이처럼 근로 시간의 단축은 우리 사회의 최대 문제인 저출생의 해결책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근무 시간을 줄이는 것은 기후 위기 해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업 운영에 필요한 사무실 및 작업 공간 등 상업용 건물의 에너지 사용량이 줄어드는 동시에, 근로자의 통근 횟수가 줄어들어 출·퇴근 시간에 발생하는 교통량이 감소돼 탄소 배출량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만약 영국이 2025년까지 주 4일 근무제로 전환한다면 기존보다 12만 7,000톤의 온실 가스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이에 미국 에너지 정보국은 '근무시간 단축이 다른 많은 기후 위기 해결책보다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주 4.5일 근무제는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근로 문화에 전적으로 부합한다. 이는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변화의 시도로써 주 4.5일 근무제 도입을 서두르는 게 필요하다.
'주 4.5일 근무제'는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독일 뿐
많은 현대인이 근무시간으로 고통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충분한 준비 없이 주 4.5일 근무제를 도입하는 것은 고통 해결의 돌파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높은 업무강도 및 부담감 등으로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우선 근로 시간이 단축될 경우, 임금 역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일급이나 주급으로 급여를 받는 노동자에게 주 4.5일 근무제는 경제적으로 직접적인 지장을 준다. 결국 노동자는 생계를 위해 추가적인 부업이나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밖에 없다. 주 4.5일 근무제가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을 추구했던 실시 목적과는 다르게 오히려 삶의 질 저하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기업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일의 양은 그대로인 채 무작정 근로 시간만 줄인다면, 그에 따른 업무 부담만 높아질 뿐이다. 줄어든 근로 시간에 맞춰 업무 전면 재배치가 이뤄진다면 이에 적응하는 것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기업이 근로 시간 단축에 맞춰 성과물을 줄일 경우,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돼 문을 닫게 돼 일자리가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주 4.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 노동자와 기업 모두 손해는 피할 길이 없다.
주 4.5일 근무제 도입 방식에 대한 논의가 충분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일률적 강행 도입 방안과 노사 자율 도입 방안을 놓고 벌이는 논쟁은 여전히 평행선이다. 정부 차원에서 도입을 강행하는 것은 기업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고, 노사 자율에 맡길 경우에는 기업마다 적용하는 방식이 천차만별이어서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주 4.5일 근무제를 도입하더라도 제대로 자리 잡을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주 5일 근무제는 지난 1998년 도입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노사 간의 원만한 의견 조율과 6단계의 공식 조정 과정을 거치며 14년이 소요된 후 2011년이 되어서야 완전히 자리잡았다. 이 과정에서 기업과 근로자 모두 경제적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한 예로 병원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주 4.5일제를 실시하면서 충원을 하지 않을 경우, 이에 따른 환자들의 불만이 속출할 것이다. 원활한 업무 수행을 위해서는 현재보다 더 많은 의료인이 필요할 것이고, 이는 병원에 경제적 부담을 초래한다. 단기간에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많은 의료인을 채용하다 보면 업무 능력이 떨어져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병원의 특성상 위급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른 책임을 누구에게 지게 할지 논쟁이 불거질 것이다. 신속성과 원활한 대처가 절대적으로 강조되는 병원 업무의 특성상 주 4.5일 근무제는 이득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다.
주 4.5일 근무제는 당장은 지속가능한 사회의 밑거름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마이너스가 되는 방안일 뿐이다.
이주영·황지현 기자 press@gachon.ac.kr